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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 = 양서

공간의 미래)2장 종교의 위기와 기회

by 윤스건이 2021. 7. 19.

저자는 공간과 건축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우리에게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볼수있게 만들어줍니다.

 

이번에는 제가 세번째로 읽게된 류현준저자의 책 '공간의 미래'를

 

소개해봅니다.

 

그중 1장은 마당같은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입니다.

 

공간의 미래)1장 마당같은 발코니가 있는 아파트

저자는 공간과 건축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우리에게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볼수있게 만들어줍니다. 이번에는 제가 세번째로 읽게된 류현준저자의 책 '공간의 미래'를 소개해봅니다. 1장 마당

yunslee.tistory.com

 

오늘은 함께 2장을 살펴보겠습니다.

 

 

 

 

2장 종교의 위기와 기회

 

 저자는 종교를 공간과 건축의 관점에서

 

상당히 논리적이고 설득력있는 전개를 펼쳐보입니다.

 

여러면에서 생각지도 못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종교에 대해서 이렇게도 볼수 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

 

종교와 공간의 개념에서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눈으로 볼수 있도록 만든 것. 그것이 구석기 시대에는 동굴의 벽화라고 합니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

 

 이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만들어 서로에게 전하며 종교,

 

즉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벽화는 늘 동굴에 그려서 그 공간감을 충분히 살린다고 합니다.

 

공간감은 외부와 단절하여 눈으로 볼 수 없는 그것을 

 

충분히 공감하게 만들고 믿음을 가지게 만든다는 겁니다.

 

그중 터키 남동부에 있는 신석기 시대 유적

 

괴베클리 테페는 벽과 기둥을 통해 외부와 단절을 가지고

 

더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며 종교권력을 만드는 방식의 증거라고 봅니다.

 

 

괴베클리 테베 발굴현장

 

 

공간의 중심. 그리고 권력의 집중

 

류현준저자는 앞선 두권의 책에서도 시선이 모이는 곳에 권력이 집중된다고 언급합니다.

 

그래서 그는

 

공간과 권력의 제1 원칙

 

=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 그곳에 권력이 창출된다.

 

 

 

이는 회사에서 부장급과 과장급, 그리고 대리급의 자리배치만 봐도 충분히 알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당 의자가 가로로 긴 이유

 

저자는 교회당 의자가 가로로 긴 이유가 권력의 집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배시간 내내 꼼짝도 못하고 앉아있도록 고안된 것으로 보는 겁니다.

 

실제로 장의장 가운데 앉은 사람은 양 가에 앉은 사람에 비해 움직임이 분명 제한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동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체적으로 교회는 많지 않은 재정을 가지고,

 

운영하는 소규모 동네교회가 많습니다.

 

그런 교회에서 개인의자를 배치하는 것은 사치이죠.

 

장의자는 즉, 가성비 갑이라는 개념이 됩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좀 좁게 앉게 되지만 다 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규모가 되는 큰 교회들은 대체로 개인의자로 전환되는 추세죠.

 

만약 권력의 집중에 해당된다면, 

 

장의자를 포기할 이유가 없죠^^

 

다만 저자는 교회를 바깥 시점에서 보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결과를 보고 원인을 분석하다 보면 다른 방향을 보게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일예로, 저자는 책 69페이지에서

 

신전과 고깃집을 비교했습니다.

 

신전과 고깃집의 차이가 있다면

 

신전은 하늘로 그 연기를 올려 제물을 바친다면

 

고깃집은 환풍기로 연기를 빼내려고 노력한다는 겁니다.

 

*연기에 대한 그의 사유는 함께 생각해볼만 합니다.

 

신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하늘에 인간이 만든 것 중에서
중력을 거슬러서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연기밖에 없었다.

69P 

 

^^; 문장이 어색한건 편집과정에 누락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다시 써보면

 

신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만들수 있는 것 중에 중력을 거슬러서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연기 밖에 없었다.

 

무언가를 올리기 위해 고기를 태웠다는 생각은 기발합니다.

 

다만, 그러한 추측으로 본다면,

 

차라리 무언가를 올려보내는 것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서두에 말한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게하려는 노력의 산물이 될수 있습니다.

 

 

 

사실 종교의 위기와 기회의 장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무진장 많습니다.

 

스님과 목사님에 대한 비교, 공동체의식의 중요성, 이슬람교가 하루 다섯번 기도드리게 하는 이유,

 

등등 너무 많은 소재가 있어서 다 다룰 수는 없고.

 

한가지만 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83P 전염병이 만드는 종교 권력의 해체와 재구성

 

이번 파트는 상당한 공감을 가져다주는 글이었습니다.

 

내용.

 

14세기 흑사병이 전 유럽을 강타 했을 때 이들은 신앙의 힘으로 모여서 기도하고 해결하려고 했다.

그럴수록 전염은 심해지고 사상자는 늘어갔다.

 기독교 중심의 중세시대는 흑사병으로 결국 와해됐고 이후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가 발현하게 되었다.

전염병이 사회를 바꾸는 메커니즘은 이와 같다....

그런데 전염병은 이 메커니즘을 깨어부순다. 즉, 자연스럽게 권력 구조와 공동체 구조를 변형시킨다.

 

그래서 저자는

 

1. 전염병이 바꾼 메커니즘을 새롭게 접근해야한다.

 

2. 공간을 재창출하여 지역사회에 이바지해야 한다.

 

두가지 정리를 합니다.

 

1. 매커니즘을 새롭게한다는 측면에 있어서

 

기독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먼저는 공간과 사람이라는 정의에서부터 비롯된

 

몇가지 사유로 신앙을 정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예로, 교회는 공간을 통해 성장한 것이 아닙니다.

 

각 사람의 이성과, 감성, 그리고 보이지 않는 존재의 유무를

 

경험을 통해서, 믿음이라는 인간고유의 습성을 통해서 

 

그리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절대자의 존재에 대해서

 

상당히 깊은 사유를 해야 합니다.

 

그러한 신앙을 공간과 종교라는 지엽적인 관점으로만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초대교회시절 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급성장한 것이 아니라

 

목숨을 앗아가는 핍박속에서도

 

분명한 신앙을 통해 

 

폭박적인 성장이 이뤄진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연민도 아니고, 

 

지역사회 봉사도 아닙니다.

 

오직 한분 예수그리스도에 감격하고

 

그분의 진심을 전하는 일을 하면서

 

교회가 세워지고, 성장하고 지금까지 존속하는 겁니다^^

 

길어지니 여기까지만요^^

 

2. 공간을 재창출하여 지역사회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말에 적극 공감합니다.

 

지역사회 곳곳에 교회 없는 곳 없습니다.

 

교회가 예배당을 오픈하고 여러가지로 지역사회에서 쓰임을 받는다면

 

이는 정부가 하지 못한 정말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교단과 교회가 이에 대해서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말이 길었습니다.

 

 

다음엔 3장으로 찾아오겠습니다.

 

 

 

나의 결론

 

뜻하지 않게 반대되는 의견을 좀 남긴듯 합니다.

 

하지만 제가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받게되는 인싸이트는 분명히 많습니다.

 

저자가 이 글을 보지는 않겠지만, 

 

저는 저자의 책 세권을 통해서 건축과 공간에 대한 놀라운 사유에

 

존경과 감사를 표합니다^^

 

계속 읽을 수 있는 저자의 글이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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